“아름다운 이별”
글 / 서석철 단장
한 해 한해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 주변에는 대부분 인생의 후반전을 달리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난 2018년에는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이 없었던 정년퇴임식에 2~3번 참석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참석자들 대부분이 정년퇴임자를 향해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정년퇴임이란 어쩌면 일상에서 제외되는 일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상실감이 적지 않을텐데..... 내가 경험이 없어서인지 그런 사람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인사는 참석하는 곳마다 계속 이어졌고, 나는 여전히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지난 연말, 존경하는 어느 원장님의 정년퇴임식에 참석해서 들은 축사에서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고, 정년퇴임이 갖는 의미가 참으로 대단함을 알게 되었다. 한 직장이나 단체에서 정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강제적으로 밀어내는 명예퇴직, 주변인들이나 가족과의 관계, 건강 등등의 문제가 정년을 채우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면 정년퇴임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몇 개월 전, 한 방송에서 “우리 자연사(自然死) 하자”라는 이상한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 젊은 사람들을 봤다. 그 노래 제목의 의미를 들어보니 그도 그럴 법 했는데, 이유인 즉은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고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자연사(自然死)보다는 병사(病死) 또는 사고사(事故死)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런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듣고 나서, 그동안 경험했던 내 주변의 많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니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살아생전에서의 정년퇴임처럼, 자연사(自然死)는 별로 없고, 병사(病死) 또는 사고사(事故死)가 많았는데, “걱정하지 마 기대하지 마,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만큼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에게 있어서 죽는 다는 것은 분명히 슬픔이다. 하지만 성경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태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잘 죽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잘 죽는다는 것이 단지 고통 없는 죽음만을 말하거나, 비싸고 멋있는 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잘 살아야 그 죽음이 의미가 있게 된다는 말 일 것이다. 그래서 “죽는 날이 더 낫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다가 죽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한 정년퇴임이나, 죽음은 어쩌면 일상에서 또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년퇴임 역시 잘 죽는 것만큼이나 중요할 것인데, 그런 일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아닌 떠나는 사람의 평소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만큼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만 가능한 것 같다.
나 역시 늘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가 중요함을 강조하지만, 몇 년 남지 않은 정년과 그리 길지 않을 인생의 종착역에서 과연 나는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불러일으킬만한 삶으로 마무리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정년퇴임식에 참석하고 나서는 기도제목이 하나 더 생겼다.
“하나님! 사역도, 삶도 아름답게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선하게 인도하여 주셔서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는 기도 말이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전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