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으로...”
글 / 서석철 단장
한 때, 어떤 말에 대해 식물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해서 실험한 결과가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식물에게 좋은 말, 예를 들어 두개의 식물에게 "사랑한다. 예쁘다"등의 말을 반복해주고 "잘 자라거라" 같은 축복의 말을 반복해 주면 그 식물이 그런 말을 듣지 않은 다른 식물보다 훨씬 잘 자라는 실험 결과가 있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저자 에모토 마사루는 물에게 좋은 말을 해주었을 때의 물입자의 모양은 모두 6각의 결정체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반면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의 물 입자는 모양이 흐트러지고 보기 싫은 모습을 띤다 고 특수촬영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말은 크게 죽이는 말과 살리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라는 말처럼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유익을 끼칠 수도 있지만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또 중국의 고사성어 중에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한 치밖에 안 되는 바늘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처럼 비록 세 치의 혀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있고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요한복음에는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의 인도로 모든 사람들이 평생을 기대했던 메시야인 예수님을 만난다, 그 메시야의 첫마디는 한낱 어부에 불과했던 자신을 네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는 얼마나 감격했을까?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베드로에게는 그가 누구인지 아셨고 또 그에게 장차 있을 일을
첫 만남을 통해서 이미 예언해주시는 그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베드로가 느꼈던 그 감격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만약 예수님이 베드로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의 베드로의 심정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우리의 자녀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져야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내 주변의 사람들을 향한 기대와 눈길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미완성인, 조금은 함량미달인 것 같은 내 자녀들과 내 주변 사람들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시고, 온전하게 만들어 가실 것이라는 그런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데, 그 이유는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도 내게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께서 “아무개야! 네가 지금은 작품이 아니라도 장차 작품이 된다.”라며 나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으시고 여전히 나를 향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오래 기다려 주시는 것처럼
안드레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을 찾아온 시몬을, 관심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눈여겨 바라보시고 신적 통찰력으로 베드로의 이름을 시몬에서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로 고쳐주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의 자녀들을 비롯한,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내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장차 그러니까 미래의 어느 때에 가서, 언젠가는 반드시 그들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다려줘야 할 것이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요 1:42)